호치민을 여행할 때는 오토바이를 조심해야 한다.

호치민

베트남에서 가장 존경 받는 인물,
호치민

1890년 교육자 가정에서 태어난 응우예신궁은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베트남을 떠나 프랑스로 가서 사진사로 일하며 프랑스 사회주의 당에 입적한다. 레닌의 책을 읽고 공산활동을 중단하고 사회주의자 모임에 참여하게 된 그는 그 모임을 통해 베트남 역사상 처음으로 공산당원이 되었다. 30년간의 외국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민족해방 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되고 독립선언문을 발표하며 베트남 민주 공화국을 세우게 된다. 국가 주석이자 수상으로 10년간 활동하며 사회주의 공화국을 건설하고 남북통일을 진행했던 그는 1969년 11월 29일 하노이에 있는 집에서 별세하였다.





응우예신궁은 그 본명보다는 중국에서 생활하던 때 스스로 만들었던 이름, 호치민으로 우리에게 더 익숙하다. 대한민국이 일제의 점령을 받았던 것처럼, 베트남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었다. 모든 제국주의가 그랬던 프랑스는 베트남의 생산물을 강제로 수탈해갔고, 베트남 사람들의 전통 문화를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사고방식을 이식시키는데 집중했다. 이로 인해 정작 그 지역의 진짜 주인인 베트남인들에게는 춥고 배고프고 고달프며 치욕적인 인생만이 유일한 삶의 옵션이 되어갔다. 수 많은 사람들이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던 시절에 그것을 실제로 일어나게 만든 호치민. 본명보다 호치민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는 그에게 베트남인들은 존경과 친근함을 담아 박호 Bac Ho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이는 우리말로 호아저씨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도 베트남인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며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호치민.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도 하노이보다 더 역사적이고 더 문화적이며 더 상업적인 도시 사이공은 그의 이름을 따 호치민 시티가 되었다.

처음 만나는 호치민

호치민(현지에서는 아직도 사이공이라는 옛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은 베트남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오토바이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호치민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오토바이들이 거리를 달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며, 빨간 불을 무시하기 일쑤고, 횡단 보도 앞에서도 절대로 멈추지 않는 운전자들을 보며 어떻게 길을 건너야 될지 고민에 잠기게 될 것이다. 단순히 길을 건너는 것뿐만 아니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모든 일들에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흥정의 기술이 어느 정도의 레벨에 올랐느냐에 따라서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고도, 같은 물건을 구매하고도 그 가격차가 확연히 달라지는 곳이기에 얼마를 내야 뒤통수 맞지 않는 적절한 가격일까를 여기 저기서 찾아보고 조언을 구했더라도 잠시 긴장을 놓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지역사회에 이바지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 화려한 양식의 베트남 전통 사원


▶ 복잡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호치민의 골목

호치민의 이모저모

공항을 통해 오든, 버스터미널을 통해 오든 여행자든 여행자라면 일단 데탐거리 (팜응우라오, Pang Ngu Lao)로 이동할 것이다. 데탐거리는 방콕의 카오산로드와 필적할 만큼 그 규모가 크고 활기가 넘치는 여행자거리다. 숙소, 식당, 여행사 등이 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고, 호치민에서 가장 크고 생동감이 넘치는 벤탄시장과의 거리가 도보 10분 정도로 가까이 있으며, 호치민의 역사적 건축물들이 즐비한 시내 중심가까지도 도보 20여분 거리에 있다. 무엇이 시끄럽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호치민을 세계적인 여행자거리가 있을 정도의 여행지로 만들었을까?

생활 물가가 싸고, 음식이 맛있으며, 역사적 문화적 유산이 많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일단호치민은 베트남을 대표하는 도시로 그 중심부는 통일궁전, 오페라하우스, 중앙우체국 등 역사적인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호치민 시티 뮤지엄, 베트남 역사 박물관, 혁명 박물관 등 수 많은 박물관과 같은 박물관들도 있어 베트남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베트남 쌀국수는 국내에도 수 많은 체인을 만들어 냈을 만큼 그 맛이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으며 전 세계적으로 커피 생산량이 손에 꼽히는 만큼 커피 맛도 좋다. 벤탄시장에서는 과즙이 풍부하고 싱싱한 과일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고 노점에는 생과일을 직접 갈아서 만드는 주스를 못해도 국내 1/5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호치민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도시의 문화유산과 자연유산들이 호치민에 여행자들이 모이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구찌에는 프랑스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베트남인의 게릴라 활동의 중심지이자 베트남 전쟁이 일어졌을 당시에도 미군과의 전쟁을 위해 사용되었던 구찌터널이 있다. 이 터널은 입구가 정교하게 위장되어 있어서 외부에 눈에 띠지 않았으며 베트남 전쟁 시에 이 터널은 미군 기지 밑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터널의 존재를 몰랐다고 한다. 또한 미토에서 출발해 작은 배를 타고 지류 양쪽으로 펼쳐진 정글을 탐험하며 주변의 마을들을 방문하는 메콩델타투어는 호치민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빼 놓지 않고 해봐야 할 액티비티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각 국과의 전쟁과 식민의 역사, 내전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베트남을 보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를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역사 속에서도 조금의 차이들이 발생했고 다름의 선택 속에서 베트남과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이 이질적으로 변하게 되었을 것이다. 경제력만으로는 누가 더 잘났다 누가 더 잘됐다 라고 판단하기 쉽다. 그렇지만 삶에서 중요한 것은 가격이 아닌 가치다. 호치민에 가면 그들만이 가진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서 당당히 서
있는 성당이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 호치민의 보행자 사정은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글 최아람
사진 이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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